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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칼럼]대한민국 제1호 여행전문기자의 퇴임.
조근호 변호사

제 친구가 정년을 맞이하여 2월 28일부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그럴 나이인지라 정년퇴임이 뭐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이 친구의 정년퇴임은 남다른 그 무엇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10월 20일 한 직장에 입사하여 36년 4개월을 그 직장에 다니고 그 기간 중 23년 9개월을 한 가지 일만 하다가 퇴임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시간이 지나면 얻게 되는 그 흔한 '장'자리 하나 맡지 않고 평생 현장을 누비며 살다가 이제 정년퇴임을 하는 특별한 친구입니다. '동아일보 제1호 여행 전문 기자 조성하'. 그의 이름과 직함입니다.

"어찌어찌하여 36년 4개월 동안 첫 직장을 마지막 직장으로 삼게 됐습니다. 한 가지, 그나마 제가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건 입사 당시 서원을 마침내 이룬 것입니다. 정년퇴직하는 날까지 현장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로 남자는 것이었지요. 동아일보 사장님도 우리 신문사에 반백의 머리칼로 현장을 누비는 기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그 1호가 제가 된 것도 스스로 자랑스럽습니다."

그가 지인들 카톡방에 남긴 글 일부입니다. 한 직장에 36년을 근무하고 한 가지 일을 23년을 하면 그 일에 '문리'가 터득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전문가,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직장생활 후반을 관리자로 살게 됩니다.

저도 수사를 하였던 검사지만 1983년 검사가 되어 1995년까지 12년을 수사 검사로 생활하였고 그때부터 2011년 퇴임할 때까지 16년을 행정부서 근무나 관리자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직장생활 모습입니다.

제 친구도 유능한 기자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부장도 국장도 그 앞에 가능하였습니다. 1995년 1월 김영삼 대통령은 시장개방정책에 맞추어 ‘세계화 추진 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바야흐로 전 국민 해외여행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여행 전문 기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여행 전문 기자를 사내 모집하였습니다. 몇몇이 지원하였지만 편집국장 눈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국장은 조성하 기자를 불러 혹시 여행 전문 기자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여행 전문 기자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의 앞에 소위 출세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부장도 국장도 불가능한 기자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저 배낭을 메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듣고 본 것을 독자들에게 기사로 쓰는 일만 평생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아내와 상의하였고 아내도 그런 삶도 의미 있겠다고 동의해 주어 동아일보 제1호 여행 전문 기자가 탄생하였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제1호 여행 전문 기자일 것입니다. 그는 1995년 5월 11일 여행 전문 기자로서 첫 기사를 씁니다. 그리고 그동안 80여 개 국가 800여 도시를 취재하며 줄곧 한 길만을 걷다가 이제 정년으로 퇴임하는 것입니다.

그를 만난 지 몇 년 되었습니다. 그가 한 강의를 듣고 몇 번 만나다 보니 동갑내기임을 알게 되었고 이내 말을 트는 막역지우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면 그의 삶을 부러워합니다. "평생 공짜로 여행만 다니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 정말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야."

그러나 그가 얼마나 출세의 욕구를 누르고 누르고 자제하였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저라면 그처럼 그렇게 한 가지 일만 평생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평생 직업을 서너 개는 바꾸는 시대라고 합니다. 한 우물만 파면 그 우물에 빠져 죽는다는 농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우물만 팠습니다. 그래서 그를 존경합니다.

가족들과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하고 싶을 때면 그에게 SOS를 쳤습니다.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면 좋을까?" "어떤 컨셉으로 가고 싶어." "그저 자연이 좋고 가족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대화가 이렇게 이어지면 그는 여행계획을 좍 짜서 보내줍니다.

호텔은 어디, 식당은 어디, 놀 거리는 무엇 등등.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안내브로슈어까지 전해줍니다. 그가 추천하는 코스는 보증수표입니다. 작년 오스트리아 산골 마을 엥알름 Eng-Alm을 추천하며 보낸 카톡입니다. "엥알름 안에 있는 Rasthutte라는 곳은 여기서 방목하는 소에서 짠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농장인데 그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그 치즈로 만들어 제공하니 꼭 맛보시길." 

그를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퇴임하면 잘 붙어 다닐 테니 세상의 좋은 곳으로 데려다줘. 오래 여행 전문 기자를 하였으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을 잘 알 것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Home Away Home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꿈을 꾸었습니다. 세상의 아름답고 좋은 곳 20군데쯤 정해서 1년에 한 달씩 살아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첫 번째 장소로 추천한 곳이 오스트리아 엥알름 근방의 로이타슈 호텔입니다.

"정말 꿈같은 곳이야. 책 100권 들고 가 한겨울에 따뜻한 햇볕 쬐며 발코니와 테라스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바비큐하고, 하루 두세 시간은 크로스컨트리 스키로 운동 나가고, 지하 영화관 겸 음악감상실에서는 그동안 못 보았던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좋은 사람 불러 모아 작당도 하고"

그가 설계하고 제가 맞장구친 우리들의 은퇴 후 꿈입니다. 쉽게 실현되기는 어려운 꿈이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런 멋있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뜁니다. 그는 여러 곳을 물색해 두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은퇴 후 그를 붙잡고 있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평생 여행 전문 기자로 살면서도 책 한 권 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간 책을 쓰지 않았던 것은 '신문기자로 일하는 동안에는 신문에 쓰는 기사에 전력하겠다'라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사엔 마감이란 게 있지만 기자에겐 마감이란 게 없습니다.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부족한 게 진실과 사실이니까요. 그 시간을 할애해 제 책을 쓴다는 게 왠지 딴 주머니 차는 것처럼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전문가인 그에게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입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여행은 인생의 숙명이라고 했습니다. 줄여서 [여인숙]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허름한 숙박 시설'을 뜻하는 [여인숙]이라는 말에서 묻어 나오는 오래됨, 초라함, 머무름, 낯섦, 외로움, 떠나감 등등이 여행 아니 인생의 숙명 아닐까요.

그는 이제 동아일보 여행 전문 기자를 퇴임하고 하나투어 상임고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퇴임의 소회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퇴임은 물러남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여행기자에게 정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은 절대 끝나지 않으므로."

조근호 변호사  ssyoung56@xinseg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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