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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포항-경주 간 형산강 하천정비사업, 근대사 문화유적 훼손 "심각"형강보 암각서(兄江洑 岩刻書) 및 경주 우안양수장(국가지정 근대등록문화재 제292호), 문화재로 보존 "마땅"
형산강 정비사업 공사구간인 형산의 암각서(좌, '兄江洑')와 경주 우안양수장(우) 건물 <사진=영일중 하억찬 교사>

[포항=신세계보건복지통신] 하억찬 포항 영일중학교 교사 = 포항 형산 주변은 신라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며 지금도 근대문화 유적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91년 글래디스 태풍으로 안강의 제방이 붕괴되고 형산강의 범람으로 큰 피해를 빕었는데 그 원인을 형산과 제산 사이의 강폭이 좁기 때문이라고 보고 경주시의 입장을 반영하여 2015년부터 국당과 중명 간 하천정비사업 과정에서 형산의 상당 부분을 절개하였다.

해당 공사현장인 형산에는 근대유적으로 경주 우안양수장 건물, 양수장 취수구 시설, '형강보(兄江洑)'라고 새겨진 암각서(岩刻書)가 있다.

이는 100년 전부터 포항 남부지역과 연일, 대송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곡창지대로 만든 곳으로 근대유적의 산물이다.

1910년대 포항지역은 신작로와 철도가 설치되면서 포항항을 통해 일본으로 미곡을 더 많이 수출하기 위해 포항지역에 농경지를 조성하였고 당연히 수리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경주 우안, 좌안양수장은 1916년에 설립된 영일수리조합에서 운영하였는데 포항 남부지역, 연일, 대송등 형산강 하류지역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였다. 미개척지를 개간하기 위해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형산과 제산 기슭에 양수장을 설치한 것이다.

양수장의 설립으로 형산강 좌안양수장에서 약 600정보, 우안양수장에서 약 800정보의 포항지역 논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현재 경주 우안양수장만 등록 문화재 제292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존 되고 있으며 이 양수장에서 불과 5M 거리에 '형강보(兄江洑)'라고 새겨진 암각서(岩刻書)가 존재하고 있다.

보(洑)는 강물이나 냇물을 막아 물을 잠시 저장하는 곳으로 형강보의 존재는 형산강 물을 양수하기 위해 보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형강보는 제산쪽의 좌안양수장 취수구에서 형산 쪽 우안양수장까지 보를 설치하여 형산강 물을 쉽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1916년경 양수장 설치와 양수기 취입구 공사를 하면서 형강보(兄江洑)도 같은 시기에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형강(兄江)'이란 명칭은 영일군 읍지에 중명동(中明洞)을 소개하면서 '서쪽으로 형산(兄山)을 배경으로 하고 북으로 형강(兄江)으로 통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형산과 접한 강을 형강(兄江)으로 기록하고 있어 예전에는 형산강이 형강으로 불렸고 이를 증명하는 암각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형산강의 역사를 보존하는데도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이 암각서(岩刻書)는 형산강(兄山江)의 옛 이름이 '형강(兄江)'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경주 우안양수장과 함께 문화재로 보호 받아야만 마땅하다.

현장을 방문한 경상북도의회 이동업 의원(연일, 상대, 대송)은 “2015년 10월 경주 우안양수장 붕괴와 복원 과정에서 경주시와 경주시의회가 보여준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다. 설립 후 거의 80년 가까이 포항과 연일에 농업용수를 제공한 포항의 생명선이었던 양수장이었기에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주시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의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근대유적이 지금까지 길게 보존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문화재로서 계속 보존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부조장터축제와 중명생태공원 등 경주시와 연계된 공동의 상생문화로 발전시켜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관광 및 교육의 소중한 자원으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상호 기자  leesh0412@xinseg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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